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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독립 서점 사장님들이 꼽은 ‘책장 속 인생 책’ 베스트 10

여행2 2025. 7. 4. 20:07

수천 권의 책을 매일 접하는 사람이라면, 독자로서보다 더 예민한 감각과 기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바로 독립 서점의 운영자들이다. 책을 판매하는 것이 직업인 이들은 동시에 애서가이자 독서 큐레이터다. 이들은 단순히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오래 남고 여러 번 펼치게 되는 ‘책장 속 인생 책’을 늘 고민한다. 그래서 이들이 고른 책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25년 현재, 전국 각지의 독립 서점 운영자들은 자신만의 큐레이션 철학을 담아 서가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책을 책장 맨 앞에 두는지, 어떤 책에 오래 머무르는지를 살펴보면 그 서점의 정체성은 물론, 운영자의 삶의 태도까지 읽을 수 있다. 특히 ‘가장 아끼는 한 권’을 물었을 때 나오는 대답은 그 사람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통로다. 그 책이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혹은 절판된 오래된 책이든 간에, 거기에는 삶의 축적이 담겨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운영 중인 서점 10곳의 사장님이 직접 고른 ‘인생 책’을 소개한다. 단순히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책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곁에 있었던 책들이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읽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점 안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책은 당신에게도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제시할지 모른다.

 

전국 독립 서점 사장님들이 꼽은 ‘책장 속 인생 책’ 베스트

문학의 힘을 믿는 서점 사장님들의 선택

전북 전주의 ‘서점 숨’ 운영자는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인생 책으로 꼽는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과 신념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이유다. 그는 “이 책을 다시 펼칠 때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인간적인 선택은 가능하다는 위로를 받는다”고 말한다.

 

서울 성북구 ‘책방이음’ 대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들었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소설은 그에게 서점을 열기로 결심하게 만든 책이다. 그는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문학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장님들에게 문학은 단지 이야기의 전달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틀게 한 강한 언어였다.

 

부산의 ‘산책하는책방’ 대표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추천한다. 그는 이 책을 20대 초반에 처음 읽고, 이후 책방을 차릴 때까지 삶의 기준이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과 회복력에 대한 신뢰를 심어준 책으로, 손님이 찾는 책보다 먼저 권하고 싶어 한다.

비문학과 철학 도서로 방향을 잡은 책방들

인천 ‘책방사춘기’ 사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책장의 시작점’이라 부른다. 그는 “이 책은 여성이 스스로 서사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다”며, 독립출판물 큐레이션의 방향성에도 이 철학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강원 원주의 ‘책방 이듬’ 대표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가장 자주 추천한다. 환경운동가였던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서점을 환경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하는 방향을 정했다고 말한다. “책방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책에서 배웠다고 강조한다.

 

대전의 ‘고요서사’ 운영자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하나 에세이)를 추천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닫게 해준 책이다.

독립출판물과 로컬 콘텐츠도 인생 책이 될 수 있다

제주도의 ‘오늘의 책방’ 대표는 직접 제작한 독립출판물 『바다 앞에서 혼자』를 인생 책으로 꼽았다. 이 책은 서점 창업 이후의 감정, 제주에서의 일상, 바다를 바라보며 쓴 단상들이 엮여 있다. 그는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내겐 지금까지 쓴 글 중 가장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책방을 찾은 독자 중 이 책을 읽고 제주 이주를 결심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서울 연남동의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에서는 『불안을 껴안는 연습』을 인생 책으로 소개한다. 상업 출판은 아니지만, 출판사 내부에서 기획된 프로젝트 에세이로, 불안을 일상 속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섬세하게 담겼다. 독자들 사이에서도 “마치 내 얘기 같다”는 평을 받으며 조용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일상과 통찰의 균형을 찾다

수원에 위치한 ‘책과 삶’ 대표는 『보통의 언어들』(김이나)을 인생 책으로 꼽는다. 감정과 기억을 언어로 정리하는 김이나 작가의 방식이, 책방 운영자의 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로 마음을 정리하는 게 얼마나 치유가 되는지 이 책에서 처음 배웠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서울 마포구 ‘책방 오월’의 추천 도서, 『월든』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전이지만, 이 사장님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가 왜 지금 이 삶을 택했는지 되묻게 해준다”고 말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책방의 철학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서점 주인의 책장은 삶의 축적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의 인생 책은 단지 좋은 책을 넘어선다. 그 책에는 서점을 시작한 계기, 책을 고르는 원칙, 독자와의 대화를 이어가는 태도가 모두 담겨 있다. 이들의 책장은 곧 삶의 축적이고, 서점이라는 공간의 방향성을 구성하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들의 서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 가장 조용한 서가에 오래 놓인 책이 바로 이 인생 책들이다. 그 한 권을 통해 누군가는 다시 삶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책방의 철학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은, 사장님의 삶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창이 되기도 하고, 손님에게는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독립 서점은 책의 순환을 넘어 관계의 공간이다. 그 안에 있는 책들 역시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서, 어떤 인생을 함께 걸어온 조력자이자 증인이 된다.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 어쩌면 지금 이 글을 마치고 서점에 들어선 당신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당신도, 언젠가 인생 책을 소개해줄 서점 운영자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