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코스에 포함 가능한 전국 독립 서점 투어 추천 루트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새로운 풍경과 음식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진짜 깊은 여행은 ‘그 지역의 삶’을 잠시라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유명한 관광지만 찾지 않는다. 오히려 골목, 시장, 서점 같은 작은 공간에서 뜻밖의 감동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 독립 서점은 그 지역의 문화를 가장 밀도 있게 담고 있는 장소 중 하나다. 소도시의 감성, 지역 작가의 목소리, 주민의 관심사까지 서점의 큐레이션과 분위기 속에 녹아 있다.
2025년 현재 전국 각지의 독립 서점들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지역성과 창의성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점들을 중심으로 ‘책을 향한 여행 코스’를 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다를 보러 떠났다가 작은 책방에서 한 권의 시집을 발견하고, 설레는 골목길 끝에서 책 향기를 만나는 여행. 이번 글에서는 여행 코스와 연결 가능한 독립 서점 루트를 지역별로 구성해 소개한다.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이제 지도를 펴고 서점을 향해 떠나보자.
제주 – 바다와 바람이 머무는 책방들
제주에는 책방과 여행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공간이 많다. 대표적으로 서귀포의 ‘우연못책방’은 투명한 창을 통해 중문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책방으로, 지역 에세이와 독립출판물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창밖을 배경으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이 책의 배경이 되고, 독서는 감정의 출구가 된다. 근처에는 ‘카페태희’, ‘천제연폭포’ 등이 있어 반나절 코스로 제격이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제주시 구좌읍에는 ‘봄날의책방’이 있다. 작고 조용한 마을 안에 숨어 있는 이곳은 제주 이주 작가들의 책과 수필집이 진열돼 있어, 단지 책을 읽는 것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서점 주인이 직접 제작한 독립 출판물도 볼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글쓰기 모임과 북토크가 열린다. 구좌해변과 월정리 해안도로가 인근이라, 책방을 방문한 뒤 천천히 해변 산책까지 곁들이기 좋다.
강원도 – 자연과 책이 어우러지는 산속 책방 루트
강원도는 그 특유의 한적한 자연과 어울리는 독립 서점들이 숨어 있다. 특히 평창의 ‘산책하는책방’은 산길을 조금 걸어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자연의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독서를 경험할 수 있는 책방이다. 이 서점은 시집, 인문서, 철학서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창밖으로 숲이 보이는 독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주말에는 ‘자연 읽기 북클럽’이 진행되며, 한 번 다녀간 손님들이 다시 찾아올 만큼 감성적인 힘이 있는 곳이다.
또 다른 추천 코스는 강릉이다. 강릉의 ‘이따금서점’은 바닷가와 가까운 거리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책방으로, 사진 에세이와 여행기를 중심으로 큐레이션한다. 근처에는 안목해변과 경포대가 있어 책을 고르고 커피 한 잔을 곁들인 후 산책을 즐기기에도 훌륭하다. 서점 내부에는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한 굿즈 코너도 있어, 특별한 여행 기념품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인기다.
전라/경상 지역 – 골목과 예술이 흐르는 도시형 서점
전주는 이미 ‘문화 도시’로 불릴 만큼, 감성적인 장소가 많다. 그중에서도 ‘서점 숨’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서점으로, 지역 문학과 독립출판물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서점 안은 벽돌과 나무가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월 2회 작가 강연이 열린다. 여행자라면 한옥마을을 걷고 난 뒤 들러보기에 딱 좋은 위치다.
경상남도 통영에는 ‘책밭’이 있다. 서점과 정원이 함께 있는 이곳은 마당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중 하나다. 지역 출판사와 연계된 기획 전시도 진행되며, 때로는 바다 소리를 배경으로 독서가 이루어진다. 통영 여행 루트에서 미륵산이나 동피랑 마을을 돌고 난 뒤, 조용한 시간 속에서 독서를 즐기기 좋은 코스로 추천된다.
수도권 – 여행하듯 만나는 도심 속 서점들
서울에도 물론 유명한 독립 서점들이 많지만, 조금 외곽으로 눈을 돌리면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 남양주의 ‘포레스트북스’는 북한강변 근처에 위치해 있어, 한강 자전거 코스를 따라 이동하다 들르기에 좋은 위치다. 숲을 테마로 한 서점으로, 자연과 생태에 관련된 도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특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으며, 북가드닝 클래스도 열리고 있다.
수원의 ‘책방인사이트’는 도시재생 구역에 위치한 서점으로, 예전 다방이었던 공간을 개조해 만들었다. 내부는 복고풍 디자인과 현대적 조명이 어우러져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상적인 공간이다. 여행자는 수원화성을 둘러본 후 이곳에 들러 짧은 쉼과 함께 인문 에세이를 한 권 골라가기 좋다. 서점 주인은 책보다도 '머무는 감각'을 중시하며, 방문객에게 느린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제는 책을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과거 여행은 유명한 장소를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감정의 리듬을 조절하는 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에 가장 잘 맞는 공간이 바로 독립 서점이다. 독립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역 문화를 이해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도시 속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여행 일정 속에 책방 한 곳을 끼워 넣는 것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진짜 여행자의 여유를 보여준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감성의 장소, 예측 불가능한 한 권의 책이 당신의 여행을 더 깊게 만든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어떤 도시에서 만난 책방을 기억하며 그 책장을 다시 펼치게 될 것이다.
지금 떠나는 여행이 단지 어디로 향하느냐보다, 어떤 책과 누구를 만나게 될지에 집중해보자. 독립 서점은 그렇게 당신의 길 위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