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독립 서점의 기록: 문을 닫은 책방들이 남긴 이야기들
한때 누군가의 일상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목적지였던 독립 서점들이 하나둘 씩 문을 닫고 있다.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취향을 공유하던 이 특별한 장소들이 사라질 때마다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표현하고, 그곳에 남겨진 기억들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특히 요즘처럼 대형 서점과 온라인 플랫폼이 독서를 지배하는 시대에는, 독립 서점의 폐업은 단순한 상업 공간의 정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사람의 철학, 한 지역의 감성, 한 시대의 문화적 흐름이 닫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문을 닫은 독립 서점들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남기고 떠났는지를 돌아본다. 사라진 책방은 단지 한 장소가 아니라, 작지만 밀도 있는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그 속에서 독립 서점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작은 공간의 힘’을 다시금 조명해보고자 한다. 오늘 소개하는 책방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공간들이다.
연남동 ‘책방 위로’ – 위로가 되던 공간의 끝
서울 연남동 한 골목에 위치했던 ‘책방 위로’는 이름 그대로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던 서점이었다. 이곳은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감정과 문장, 그리고 관계의 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책방지기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 주로 에세이, 시집, 여성주의 서적 등 개인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로 구성된 서가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했고, 창가 자리에는 감성적인 글귀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종종 책방지기의 손편지와 엽서가 전시되었고, 방문자들은 책을 사고 돌아가기보다는 오랫동안 머물며 문장을 곱씹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2023년 중반, 책방 위로는 결국 임대료 상승과 운영 피로도를 이유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책방지기는 마지막 SNS 글을 통해 “이곳은 늘 위로받고 싶었던 내가 만든 쉼터였고, 많은 사람들이 내게 위로를 건네주었기에 감사했다”고 적었다. 연남동 골목을 걷는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무심코 그 자리를 바라보며, 따뜻했던 그 책방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사라진 간판 위에 쌓인 먼지 속에서, 기억은 여전히 조용히 살아 숨 쉰다.
서귀포 ‘유화당’ – 문학의 숨결이 흐르던 집
서귀포 이중섭 거리에서 한동안 인문학의 숨결을 전하던 공간 ‘유화당’은, 단순한 카페형 서점을 넘어서 지역 예술가와 독자가 함께 호흡하던 커뮤니티였다. 책방지기는 인문학 강연과 클래식 음악 감상회를 운영하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문화를 나누는 소통의 장을 열고자 했다. 고풍스러운 내부와 고래 벽화로 꾸며진 외관은 많은 이들의 사진 속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또한 2023년 10월, 마지막 책장을 닫고 폐업을 알렸다. 유화당은 책을 팔아 돈을 벌기보다는, 문화를 함께 나누고 싶은 의지로 운영된 공간이었기에 경제적 지속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곳을 기억하는 이들은 “서귀포에서 가장 조용한 철학적 쉼터였다”고 말하며, 지금도 이 공간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유화당의 마지막 문은 닫혔지만, 그 책방에서 주고받은 말과 침묵, 눈빛과 글귀는 여전히 서귀포 거리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책을 사고파는 거래가 아닌, 한 도시의 감수성과 문화적 호흡의 일부였다.
성수동 ‘책방 피노키오’ – 동화처럼 사라진 환상의 서점
서울 성수동의 한 모퉁이에는 한때 '책방 피노키오'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독립 서점이 있었다. 이곳은 동화책, 그림책, 철학 에세이를 중심으로 큐레이션되었으며, 어린 아이와 어른 모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입구를 들어서면 천천히 읽히는 문장들과 포근한 조명이 맞아주었고, 벽에는 동화의 한 장면처럼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책방 안에는 작고 낮은 책상이 놓여 있었고, 누구든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마치 동화 속 작은 도서관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자아냈다.
방문객들은 흔히 책방지기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와 함께 조용한 독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파는 공간’보다는 ‘책이 숨 쉬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장소였다. 그러나 동화적인 공간이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 책방은 2021년 말 조용히 문을 닫았다. SNS에서 마지막 소식이 올라온 이후, 이곳은 창고 공간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문학의 향기를 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책방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검색해도 이제는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도심 속 감성 공간의 유한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책방 피노키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종종 온라인 공간에서 그리움을 표현하며, “세상 어딘가에 여전히 그런 서점이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긴다. 그 감성은 단지 공간의 구조나 책의 종류 때문이 아니라, 책방에 머물던 시간의 결이 유난히 부드럽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졌지만, 이 책방의 진심은 거짓 없이 모두에게 전해졌기에 더욱 아쉽다. 그곳에서 책을 고르고 읽고, 혹은 책방지기와 몇 마디 나눈 기억은 단순한 쇼핑 경험을 넘어선 특별한 감정의 축적이었다.
그곳에 앉아 책을 읽던 아이와 어른의 기억 속에서, 책방은 아직도 환상처럼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가끔 그런 공간을 다시 찾고 싶어 한다. 비록 다시 열리지 못할지라도, 피노키오가 상징하던 그 순수한 의도와 다정한 분위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저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을 계승한 또 다른 ‘피노키오’가 세상 어딘가에서 조용히 문을 열기를 바라는 마음은 계속될 것이다.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는 공간들
독립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상점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철학, 한 지역의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공동체를 잇는 실질적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사건이다. ‘책방 위로’, ‘유화당’, ‘피노키오’는 운영을 중단했지만, 그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들의 폐업이 안타까운 이유는, 단지 책을 살 곳이 줄어서가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잇는 감성의 접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독립서점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니라 문화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독립서점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방문과 소비만이 아니라, 책방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작은 책방 하나가 꺼질 때마다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감성이 사라지는 것임을 기억하며, 이 기록이 그 가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