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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

전주 완산구 한옥 마을 끝자락의 독립 서점 이야기

by 여행2 2025. 7. 13.
 

전라북도 전주. 그중에서도 완산구에 자리한 한옥마을은 한국적인 정서와 전통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다.
한옥이 촘촘히 모여 있는 이곳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오가지만, 그 화려함과는 달리 마을 끝자락에는 여전히 조용한 골목이 남아 있다.

오늘 소개할 책방은 바로 이 한옥마을 끝자락,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골목에 문을 연 독립 서점이다.

 

전주 완산구 한옥마을 끝자락의 독립 서점 이야기


이 책방의 이름은 ‘우물 사이 책방’.
이 공간은 처음부터 화제를 모았던 서점은 아니었고, 실제로 폐업 직전까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살아남았다.
이 책방이 겪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극복 과정은, 지금 서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책방의 시작: 예상과 다른 현실

‘우물 사이 책방’은 2022년 여름, 한옥마을의 작은 골목 안에서 조용히 문을 열었다.
서점의 이름은 실제 위치에서 따왔다.
책방 앞에 작은 우물이 있고, 그 옆 사이 공간에 책방이 자리한 것이다.
사장은 이 장소가 주는 여백과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관광지 근처이긴 하지만, 주류 상권에서 조금 비켜난 골목은 책방을 운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처음 몇 개월간은 관광객 유입 덕분에 책이 꽤 팔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여름 휴가철이 지나고, 비수기가 오자 방문객이 급감했다.
전주 지역 주민들은 한옥마을을 자주 찾지 않았고, 골목 끝에 있는 이 책방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단골이 없고, 다시 찾는 손님도 없는 상황에서 매출은 서서히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위기의 현실: 운영 지속이 어려웠던 이유

책을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는 서점을 계속 운영하기 어려웠다.
전기세, 관리비, 인건비 없이 1인 운영을 하더라도, 매달 나가는 고정비는 120만 원을 넘겼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5명을 넘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단 한 권도 책이 팔리지 않았다.

사장은 말한다.
“책을 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책은 거의 안 팔리고 커피 한 잔, 굿즈 하나가 전부였어요.
책방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였죠.”

그래도 공간을 닫을 수는 없었다.
책을 팔지 못해도, 그 공간에서 책을 고르고 머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변화의 시작: 책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사장은 어느 날, 책방이라는 공간의 쓰임을 다시 정의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책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책을 통해 사람을 연결하는 장소’**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 결정은 책방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 지역 대학생과 함께한 독서 모임

사장은 전북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연결해 매주 수요일 저녁,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첫 모임엔 3명뿐이었지만, 서로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점점 입소문을 탔다.
4주 차가 되자 12명까지 늘었고, 이들은 대부분 다시 책방을 찾는 단골이 되었다.

2. 낭독회와 글쓰기 프로그램

책방 한켠에 소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소리책방’이라는 이름의 낭독회를 열기 시작했다.
지역 시인, 성우 지망생, 배우 지망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들의 지인들이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입이 늘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콘텐츠가 생긴 책방은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매달 마지막 주에는 글쓰기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비는 받지 않았지만, 참가자들이 책방에서 책이나 굿즈를 구매하며 자연스럽게 매출이 발생했다.

3. 감성 굿즈와 지역 특화 엽서

사장은 한옥마을의 골목을 직접 촬영하고, 그 사진을 배경으로 손글씨 엽서를 제작했다.
지역 작가의 시 구절을 함께 넣은 책갈피와 미니 포스터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을 위한 감성 아이템은 의외로 인기를 끌었고, 굿즈 매출은 월평균 40~60만 원 정도로 안정됐다.

책 판매로만 구성되던 수익 구조가 굿즈, 모임,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책방은 조금씩 버틸 힘을 가지게 되었다.

체류 시간의 가치: 공간으로 기억되는 책방

예전에는 서점에 들어와 책만 보고 바로 나가던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독서 모임 전후로 두 시간 이상 머무는 손님이 많아졌다.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방은 공간으로 기억되고, 책도 함께 기억된다.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책방이 오래 남으려면, 책보다 사람이 먼저 남아야 해요.
그 사람이 공간을 기억해야, 그 다음에 책이 생각나는 거예요.”

운영 2년 차, 생존의 조건은 단순하다

현재 ‘우물 사이 책방’은 고정 단골 약 30명을 확보했고,
월 방문객 수는 평균 4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책 판매량은 여전히 많지 않지만, 체류형 공간으로서의 수익 구조는 안정적인 편이다.

사장이 강조한 생존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1. 계속 열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
    운영자가 버틸 수 있어야 책방도 살아남는다.
  2.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할 것.
    사람들이 다시 오게 만드는 이유는 책이 아니라 경험이다.
  3.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 것.
    책방이란 결국 기억을 주는 장소다.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고 다시 오면 그 책방은 존재할 수 있다.

‘우물 사이 책방’은 여전히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있고, 책을 읽는 시간과 소리가 남아 있다.
서점은 결국 살아있는 공간이며,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장소일 때 가장 오래 남는다는 것을 이 책방은 증명하고 있다.

지금 책방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통해
단지 ‘운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는 공간’을 상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