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주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이제는 단순히 오름과 해변만을 찾지 않는다. 변화는 조용히 시작되었고, 지금 제주 남부 지역, 특히 서귀포 안덕면은 이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 해변과 곶자왈 숲, 그리고 마을의 골목 사이에는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방식의 사유와 휴식을 건네는 작은 독립서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서점들은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나 관광지형 카페와는 결이 다르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성과 철학을 지닌 커뮤니티의 중심지이자, 어떤 이에게는 제주의 진짜 풍경을 발견하는 창이 된다. 안덕면의 서점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며, 고유한 큐레이션과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자연 환경과의 조화 속에서 책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제주 서귀포 안덕면에 있는 네 곳의 독립서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 서점이 가진 이야기와 공간의 특성을 함께 들여다보며, 독서와 여행이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준비해보자.
사계리 서점 – SF와 바다가 만나는 특별한 서점
사계리 해안도로에서 산방산을 향해 걷다 보면 바닷바람 사이로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계리 서점’이 나타난다. 이곳은 일반 서점과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바로 공상과학 소설(SF) 전문 독립서점이라는 점이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장르문학에 특화된 선별 서가가 인상 깊다. 국내외 SF 소설은 물론, 공포, 추리, 스릴러 등 특정 취향 독자들을 위한 큐레이션이 섬세하게 이루어져 있다. 책장 한 칸 한 칸에는 운영자의 손글씨 메모가 붙어 있어, 단지 구매용 책방이 아닌 대화형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곳의 강점은 단지 책에 머물지 않는다. 서점 1층에는 커피 바가 있고, 2~3층은 넓은 카페 공간으로 운영된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산방산을 바라보며, 평소 읽지 않던 SF 장르에 몰입할 수 있는 풍경 속의 독서 경험이 가능하다. 더불어 북토크나 소규모 북클럽 모임도 열려, 제주에서도 특정 장르 독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장르문학을 좋아하거나,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문학적 상상력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곳이 최적의 공간이다.
그림책방 노란우산 –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책의 힘
사계리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안덕면 서광리에 위치한 ‘그림책방 노란우산’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이름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그림책 전문 독립서점이다.
책방을 운영하는 부부는 ‘그림책은 단지 어린이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철학 아래, 그림책을 통해 모든 세대가 치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책방 이름 역시 류재수 작가의 그림책 『노란 우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서점 내부는 직접 볶은 원두로 내린 커피와 건강한 차가 함께 제공되는 북카페 형태로 운영되며, 다양한 그림책이 감성적으로 배치돼 있다. 특히 운영자들이 직접 선별한 작품들은 감정 회복, 상처 치유, 공감의 언어로 기능하며, 그 큐레이션에서 깊은 전문성이 느껴진다.
이곳은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문화 예술 공간으로도 활발히 활용된다. 인형극 ‘파란여우’ 공연, 작가 초청 북토크, 주제별 워크숍 등이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지역 주민은 물론 여행객에게도 공감과 배움의 장을 열어준다. 서점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넘어, 관계와 회복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커뮤니티 거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곳이다.
어떤바람 – 시와 심리, 자연의 언어가 흐르는 곳
역시 사계리에 위치한 또 다른 특별한 서점 ‘어떤바람’은 이름부터 문학적이고 상징적이다. 이름은 일본 시인 호시노 도미히로의 시에서 따온 표현으로, '어떤 바람(Wind)'이자 '어떤 바람(Hope)'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은 전직 상담심리사였던 김세희 대표와 남편 이용관 씨가 함께 운영하며, 단순한 책 판매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 쉼과 감정 회복을 위한 서점으로 꾸려졌다. 건물 외관은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고, 내부는 개조된 복층 구조로 구성돼 있어,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요 도서 구성은 에세이, 시집, 그림책이며, 모든 연령대가 편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큐레이션되어 있다. 이외에도 지역의 자연과 감성을 연결하는 독창적인 프로그램, 예를 들면 ‘소리 채집 워크숍’ 같은 소규모 예술 프로젝트도 주목할 만하다. 제주 바람, 나뭇잎, 새소리 등을 녹음하고 이를 작은 오브제로 구현하는 이 과정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예술적 몰입과 자기 치유를 유도한다.
조용히 머물며 자신의 감정을 다독이고 싶은 이들에게 어떤바람은, 이름 그대로 희망이 되는 공간이다.
인공위성제주 – 질문에서 시작된 서점
서광리에 있는 ‘인공위성제주’는 제주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독립서점 중 하나다. 이곳은 책을 단지 정보로 소비하지 않고, ‘질문’을 중심에 둔 서점으로, 매주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구성해 나간다.
운영자는 소규모 출판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특정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응답을 모아 독립출판물로 엮는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책을 구매하기 전에는 서점 내에서 책을 열람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규칙은 책에 대한 선입견을 줄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기 위한 실험적 방식이다.
또한 공간 구성은 매우 조용하고 미니멀하며, 운영자의 개인 서재처럼 사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북적이는 관광지와는 확연히 다르며, 혼자 온 여행자, 특히 자기 성찰이나 삶의 질문을 가진 이들에게 매우 특별한 정서적 여백을 제공한다.
인공위성제주는 ‘왜 우리는 책을 읽는가’, ‘우리는 어떤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제주 남쪽, 책이 있어 더 깊어진 여행
서귀포 안덕면에 위치한 이 네 곳의 서점은 각각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SF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실험, 그림책을 통한 치유와 감정 회복, 바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심리적 쉼터, 질문과 응답으로 만들어가는 지적 여정.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공간과 감정, 자연과 문장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제주 여행은 이제 단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서점들을 통해, 책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여행이 가능하다. 안덕면의 이 작은 서점들에서, 당신만의 조용한 여행 한 페이지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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